라섹 수술 날짜까지 잡아놓고 당일 아침에 아무래도 안되겠다. 이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. 하고 취소하기로 정했다. 병원에서는 별 말 하지 않고 검안 결과는 1년 동안 유효하니 정하면 다시 전화달라고 하고 취소 처리를 했다. 나같이 당일에, 그것도 내방 예정 시간 직전에 취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.
수술하기로 했던 병원에 10년 전에도 방문했었다. 검안 후 황반에 이상이 있는 걸 발견해서 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. 망막 전문의를 찾아가니 초고도근시인 사람에게 발생하는 황반변성으로, 학계에 보고된지 10년 정도밖에 안 된 질환이라는 설명을 들었다. 말인즉슨 언젠가 황반에 문제가 생겨서 한 쪽 눈이 안 보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. 아무래도 그런 질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.
각막을 건드려도 황반이나 망막에 별 문제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다는 것을 망막 주치의에게 듣고 수술을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, 비가역적인 변화가 내 눈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.
취소 후 망막 주치의를 다시 찾아서 시력교정술에 대한 의견을 다시 구했다. 여러 의견을 들었지만 가장 납득이 간 말은 다음과 같다: 애초에 시력교정술은 눈 건강에 보수적인 선택이 아니다. 치료의 목적이 아닌 수술이며, 어떤 방법이건 눈 건강에 마이너스가 된다. 부작용 없는 수술은 없다.
애초에 왜 안경을 벗고 살아보고 싶었지?
나이를 더 먹고, 노안이 오고, 내 오른쪽 눈 안의 황반변성이 진행되고, 녹내장 혹은 백내장이 생기고. 여러 수술을 하다가 언젠가 기능을 잃을 거라면, 부작용을 감수하고 안경을 벗고 사는 시간을 만들어봐도 되는 거 아닐까? 라는 마음이었다.
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.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내놓아야 하는 건 <강철의 연금술사> 외 여러 텍스트에서 충분히 접해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게 내 일이 되면 싹 다 잊어버리게 된다.
난 정말 하나도 잃고 싶지가 않다. 그런데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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